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부동 전투 (문단 편집) ==== 볼링장 전투(천평계곡 전투) ==== || [[파일:bowling alley.jpg]] || || 'bowling alley'[* 미군이 천평동 일대의 좁은 골짜기지형과 적과의 전투에서의 전차포탄이 마치 '볼링공'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 || >The road was nearly straight on a north-south axis through the 27th infantry position and for some distance northsard. Then it veered slightly westward. this stretch of the pass later become known as the "Bowling Alley" >---- >Pusan: Publication: "Battle of the Bowling Alley - Tabudong" || [[파일:볼링장전투 상황도.jpg]] || || 볼링장전투 상황도 || 미 제27연대가 복곡에 진출한 1950년 8월 18일, 적은 본격적인 보병협동으로 야간공격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개전이래 처음으로 이 골짜기에서 미군과 북괴군 간에 전차전이 전개되었다. 그 뒤 포로의 진술에 의하면, 이 무렵 정면의 적은 대구를 점령하기 위해 전차 21대를 보충보급 받았다고 한다. 이 수량은 적의 전선부대가 단번에 보급받은 최대의 전차 보급량이었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多富洞戰鬪』] 미군 27연대는 인민군의 [[전차]] 접근로인 진목정 북쪽에 배치되어 8월 18일 저녁 남하하는 T-34 2대와 [[SU-76M]] 자주포를 파괴하고 100여 명을 사살한 데 이어, 21일에는 모든 화포와 전차를 총동원한 끝에 강력한 북한군 보전협동부대의 야간 침투 시도를 5시간 만에 격퇴했다. 당시 미군은 북한군이 오리라 추정되는 길목에 지뢰를 묻지 않고 보란 듯이 땅위에 올려두었는데, 이들의 예측대로 이곳으로 온 북한군 전차 행렬 중 선두 전차가 지뢰 제거를 위해 정지한 틈을 타 3.5인치 바주카 및 전차포로 총공격을 가했다. 특히 전날 이곳의 좌표를 미리 따둔 덕에 더욱 효과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이날 제8포병대대는 포탄 약 1600발과 박격포탄 2500발을 쏘아대었다. 날이 밝은 후 확인된 전과만 전차 7대와 [[자주포]] 3대, 다수의 기타 차량과 유기된 시체 1300구였다. 이날 밤 목숨 걸고 도로 양쪽의 참호에서 저지전을 편 채 전차전을 관람(?)했던 참전자들은 북한군 T-34/85 및 SU-76M과 미군 27연대를 지원하던 73전차대대 C중대의 [[M26 퍼싱]]이 야간에 맞교환한 포탄들이 마치 볼링장 핀을 향해 질주하는 볼링공을 연상시킨다 하여 '볼링장 전투(Battle of the Bowling Alley)'로 불렀는데, 이는 한국전쟁 초반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전차전으로 알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